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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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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요타 F1은 토요타가 2002년부터 2009년까지 F1에 참전한 팀이다. 1997년 F1 참전을 결정하고, 자체적으로 섀시와 엔진을 개발하여 2002년에 데뷔했다. 2005년에는 컨스트럭터 순위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이후 성적이 부진하여 200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F1에서 철수했다. F1 철수 이후, TMG는 타이어 테스트 지원, 기술 협력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현재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활동에 큰 유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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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F1
팀 정보
컨스트럭터 이름[[File:Mini Free Logo Toyota.png|20px]] 토요타 F1 [[File:Toyota logo.svg|120px]]
엔트리 이름파나소닉・도요타・레이싱 Panasonic TOYOTA Racing
팀 본거지・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쾰른
주요 팀 관계자
주요 드라이버
이전 팀 명칭
철수 후
F1 컨스트럭터 경력
참전 연도2002 - 2009
출주 횟수140
컨스트럭터즈 타이틀0
드라이버즈 타이틀0
우승 횟수0
통산 획득 포인트278.5
포디움 피니시13
폴 포지션3
패스티스트 랩3
F1 데뷔전2002년오스트레일리아 GP
마지막 레이스2009년아부다비 GP
엔진 정보
명칭도요타
참전 연도2002 - 2009
F1 데뷔전2002년 오스트레일리아 GP
마지막 레이스2009년 아부다비 GP
출주 횟수140
탑재 팀도요타, 조던, 미들랜드, 윌리엄스
컨스트럭터즈 타이틀0
드라이버즈 타이틀0
우승 횟수0
포디움 피니시17
통산 획득 포인트384
폴 포지션3
패스티스트 랩4

2. 역사

토요타 F1 팀은 독일 쾰른에 있는 토요타 모터스포츠 유한회사(TMG)를 기반으로 2000년에 창단되었다. F1 팀은 일본 국적으로 등록되었으며, 2005년에는 30명 이상의 일본인 기술자가 파견되었다.[2]

일본 국적 컨스트럭터로는 혼다, 마키, 코지마에 이어 4번째로 F1에 참가했으며, 엔진과 차체를 모두 자체 제작하는 '풀 컨스트럭터'로는 혼다에 이어 두 번째였다. F1 머신의 설계, 제작, 유지보수는 TMG가 담당했고, 장기적인 연구 개발(R&D)은 일본 시즈오카현의 토요타 히가시후지 연구소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프랑스 마르세유 근처 폴 리카르 서킷을 테스트 코스로 사용했다.

2002년 F1에 데뷔하여 2009년까지 8년간 활동하면서 최고 성적은 2위(5회)였고, 예선에서는 폴 포지션 3회를 기록했다. 컨스트럭터 순위는 최고 4위를 기록했다. 일본 F1 컨스트럭터 중 폴 포지션과 시상대에 오른 것은 혼다와 토요타뿐이지만, 토요타는 우승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리먼 쇼크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와 2009년 3월 연결 결산에서 59년 만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토요타는 200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F1에서 철수했다.[16]

2. 1. 참전 결정까지의 경위

1990년대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서 토요타는 워크스 팀인 토요타 팀 유럽(TTE)을 통해 일본 자동차 제조사 최초로 드라이버즈 타이틀 4회(1990년, 1992년, 1993년, 1994년)와 매뉴팩처러스 타이틀 3회(1993년, 1994년, 1999년)를 획득했다.[2] 그러나 WRC에서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독점하면서 유럽에서의 인기가 하락했고, 같은 카테고리에서 계속 승리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1997년 토요타 자동차 사장에 취임한 오쿠다 히로시는 유럽에서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 구축, 점유율 확대,[4] 젊은 층에 대한 어필 등을 위해 F1 참전을 검토했다. 1997년 11월 F1 참전이 사내에서 결정되었고, 1999년 1월 21일 기자 회견에서 오쿠다 히로시 사장은 "21세기 초부터 F1 세계 선수권에 참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제조사가 F1에 신규 참전하는 경우, 기존 섀시 컨스트럭터와 협력하거나 인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토요타는 엔진부터 차체 설계까지 자체 제작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당초 2001년 참전을 목표로 했으나, F1 엔진 규정 변경 등으로 2002년에 데뷔했다.

F1 참가 가능 팀 수는 12개로 제한되어 있었고, 토요타는 국제 자동차 연맹(FIA)에 4,8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49억[5])의 공탁금을 납부하여 참가 자격을 얻었다.[6]

2. 2. 준비 기간

토요타 모터스포츠 유한회사(TMG)는 독일 쾰른에 위치하며, 2000년에 F1 팀의 모체가 되었다. F1 팀의 국적은 일본으로 등록되었다.[2] TMG는 F1 머신의 설계, 제작,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중장기적인 연구 개발(R&D)은 일본 시즈오카현에 있는 토요타 히가시후지 연구소가 담당했다.

TMG는 서킷 레이스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F1에 대한 예행 연습으로 TS020을 개발하여 1998년, 1999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했다. TMG가 F1 참전을 알게 된 것은 1998년 르망이 끝난 후였다.[7] 2000년부터 쾰른의 TMG 시설을 확장하여 F1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F1 팀의 개발 책임자에는 르망에서 2위를 차지한 TS020의 디자이너인 앙드레 드 코르탕츠가 취임했다. 맥라렌에이드리언 뉴이에게도 오퍼를 냈지만, 근무지가 독일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8] 야마하 발동기와 기술 제휴를 맺고, TS020을 테스트 카로 TMG와 폴 리카르 서킷에서 연구 개발이 시작되었다.

드라이버는 앨런 맥니시와 미카 살로가 기용되었다. 맥니시는 1999년 르망에 토요타 팀으로 참가한 드라이버이며, 살로는 일본어 소통 능력이 있었다.

2001년에는 테스트 카 TF101을 발표하고 테스트 주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아 코르탕츠는 해고되었고, 같은 해 5월에 본격 참전용 머신 개발 책임자로 구스타프 부르너를 미나르디에서 고용했다. 부르너의 갑작스러운 이적은 놀라움을 자아냈고, 미나르디의 새로운 오너가 된 폴 스토다트는 토요타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2. 3. F1 참전

2000년에 발족한 토요타 F1 팀은 독일 쾰른에 위치한 토요타 모터스포츠 유한회사(TMG)를 모체로 F1에 참전했다. F1 팀의 국적은 일본으로 등록되었으며, 2005년에는 30명 이상의 일본인 기술자가 파견되었다[2]

혼다, 마키, 코지마에 이어 일본 국적 컨스트럭터로는 4번째로 F1에 참가했으며, 엔진을 포함해 차체 전체를 자체 제작하는 풀 컨스트럭터로는 혼다에 이어 두 번째였다. F1 머신의 설계·제작·유지보수는 TMG가, 중장기적인 연구 개발(R&D)은 일본 시즈오카현에 있는 토요타 히가시후지 연구소가 담당했다. 프랑스 마르세유 근교의 르 카스텔레에 있는 폴 리카르 서킷을 테스트 코스로 활용했다.

토요타는 2002년부터 2009년까지 F1에 참가하여 8년간 활동했다. 결승 레이스 최고 성적은 2위(5회), 예선에서는 폴 포지션 3회를 획득했으며, 컨스트럭터 순위는 최고 4위()를 기록했다. 일본 F1 컨스트럭터 중 폴 포지션과 시상대를 획득한 것은 혼다와 토요타뿐이다. 토요타는 여러 차례 2위를 기록했지만, 우승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2. 3. 1. 2002년

드라이버는 전년에 발표된 미카 살로와 앨런 맥니시에 더해, 테스트 드라이버로 스테판 사라쟁을 기용했다. 사라쟁은 후에 2012년 FIA 세계 내구 선수권 (WEC) 참가를 위해 다시 토요타에 합류했다.[1]

참전 첫해, 개막전 오스트레일리아 GP에서 6위를 차지하며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다.[1] 그 후 브라질 GP에서도 6위를 차지했지만, 이후 포인트를 올리지 못하고 결국 이 두 번의 입상으로 마무리했다.[1]

자사 풍동 완성이 늦어져 TF102는 초반부터 공력면의 다운포스 부족이 분명했다.[1] 레이스 도중 리타이어도 많았고, 하위 팀 중 하나였던 미날디보다 종합 성적에서 뒤쳐져 컨스트럭터 순위 10위로 실질적인 최하위로 마감하며 (애로우즈가 시즌 도중에 철수했기 때문에) F1 세계의 혹독함을 겪은 한 해가 되었다.[1]

2. 3. 2. 2003년

B·A·R에서 베테랑 올리비에 파니를 영입하고, 2002년 CART 시리즈에서 토요타 엔진 사용자 최초의 챔피언이 된 크리스티아누 다 마타를 팀 동료로 맞이하며 드라이버 라인업을 일신했다.

시즌 시작 직후, 토요타 F1팀 직원이 페라리의 정보를 빼돌렸다는 스파이 의혹 사건이 발생했다. 토요타의 TF103이 전년도 페라리 F2002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고, 해당 직원들은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해고되었으며 2005년 11월에 기소되었다. 용의자는 토요타 컴퓨터에서 발견된 증거를 통해 죄를 인정했다고 알려졌으나, 토요타 측은 이후의 개발은 자사에서 진행해 왔으며, 페라리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큰 이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반환을 거부했다.[9]

이 해 토요타는 예선에서 두 대 모두 톱 10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전년도에 비해 개선된 점이 거의 없어 결승 레이스 페이스가 좋지 않았다. 7번의 입상으로 총 16점을 획득, 컨스트럭터즈 랭킹 8위를 기록했지만, 이는 규칙 변경의 영향이 컸고, 이전 규칙을 적용하면 실질적인 성적 향상은 없었다. 한편, TTE의 설립자인 오베 안데르손이 팀 대표에서 물러나 상담역을 맡게 되었고, 토미타 츠토무가 TMG 회장과 신임 팀 대표를 겸임하게 되었다.

2. 3. 3. 2004년

2003년 12월, 르노에서 마이크 가스코인이 테크니컬 디렉터로 합류하여 기술 부문을 총괄하게 되었다. 브루너가 제작한 TF104의 성능이 낮았기 때문에 가스코인이 개조 작업을 주도하여 시즌 중에 TF104B를 투입하게 된다.[1]

드라이버는 파니스와 다 마타가 유임되었지만, 성적 부진으로 다 마타는 팀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제12전 독일 GP 종료 후 해고되었다. 중국 GP까지는 테스트 드라이버인 리카르도 존타가, 일본 GP 이후에는 이미 다음 시즌부터 토요타 합류가 결정되었던 야르노 트룰리가 시트에 앉았다.[1] 파니스는 일본 GP를 마지막으로 은퇴했기 때문에 최종전 브라질 GP는 다시 존타가 드라이브했다.[1]

생산자 순위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8위였지만, 획득 포인트는 9점으로 줄었다.[1]

2. 3. 4. 2005년

랄프 슈마허가 새롭게 팀에 합류하여, 전년 말부터 야르노 트룰리와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미국 GP 프리 주행 중 슈마허가 부상을 입어 존타가 대신 출전했지만, 다른 미쉐린 타이어 사용 팀들과 함께 레이스를 기권했다.[1]

개스코인이 신차 TF105 설계에 본격적으로 참여했고, 토요타 팀의 풍부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팀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1] 트룰리는 제2전 말레이시아 GP에서 팀의 첫 포디움(2위)을, 미국 GP에서는 첫 폴 포지션을 획득했다.[1] 슈마허도 일본 GP에서 폴 포지션을 획득했다.[1] 두 선수는 총 5회의 포디움을 포함하여 꾸준히 포인트를 획득, 컨스트럭터 순위 4위(88점)를 기록하며 크게 선전했다.[1]

이 해부터 조던(2006년에는 조던을 인수한 MF1 레이싱)에 커스터머 엔진 공급을 시작했다.[1]

2. 3. 5. 2006년

전년도에 좋은 성적을 거두어 기대가 컸지만, 타이어를 미쉐린에서 브리지스톤으로 변경하면서 타이어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고전했다.

4월에는 기술 이사 마이크 가스코인을 해고하고 체제를 쇄신했다. 모나코 GP부터 개량형 TF106B를 투입하여 꾸준히 포인트를 획득했지만,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오스트레일리아 GP에서 슈마허가 3위를 차지하여 시상대에 오른 것이 유일한 ভালো 성적이었으며, 컨스트럭터 순위는 6위(35점)로 전년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냈다.

2. 3. 6. 2007년

2007년 토요타 F1 팀은 드라이버 라인업을 유지하고 엔진 공급 계약을 변경하는 등 여러 변화를 겪었다.

  • 드라이버: 랄프 슈마허와 야르노 트룰리가 레귤러 드라이버로 남았고, 프랑크 몽타니가 테스트 드라이버 겸 리저브 드라이버로 합류했다.
  • 엔진: 윌리엄스로 엔진 공급처를 변경하여 기술 제휴를 꾀했다. 이로 인해 토요타 영 드라이버즈 프로그램(TDP)의 나카지마 가즈키가 윌리엄스에서 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예선에서는 상위 10위 안에 드는 경우가 많았지만, 결승 레이스 페이스가 불안정하여 리타이어가 잦았다. 완주하더라도 하위권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으며, 드라이버들은 머신 밸런스와 그립 부족을 호소했다. 후지에서 개최된 일본 GP에서도 포인트를 얻지 못했다. 결국 최고 순위는 6위에 그쳤고, 컨스트럭터 순위는 6위(13점)로 윌리엄스(4위)보다 낮았다.

한편, 슈퍼 아구리와 토로 로쏘의 커스터머 카 문제와 관련하여 스파이커가 제기한 조정 재판에서 르노와 함께 스파이커를 지지했다.

같은 해 6월, 토미타 츠토무가 후지 스피드웨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야마시나 타다시가 TMG 회장과 팀 대표직을 물려받았다. 랄프 슈마허는 이 해를 끝으로 F1에서 은퇴했고, 몽타니도 팀을 떠났다.

2. 3. 7. 2008년

2008년에는 야르노 트룰리에 더해, GP2 챔피언이자 3년 만에 레귤러 시트를 얻은 티모 글록이 랄프 슈마허를 대신해 합류했다. 서드 드라이버로는 TDP 드라이버인 고바야시 가무이를 기용했다. 윌리엄스에도 계속해서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

이 해에는 시즌 초부터 트룰리가 빠른 모습을 보였고, 프랑스 GP에서는 팀에게 2006년 오스트레일리아 GP 이후 처음으로 3위 입상을 안겨주었다. 프랑스 GP 전에 전 대표인 오베 안데르손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그에게 바치는 3위 시상대였다. 글록도 시즌이 진행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 헝가리 GP에서는 2위 입상을 했다. 컨스트럭터 순위는 5위 (56점)였다.[2]

2. 3. 8. 2009년

2009년에는 야노 트룰리와 티모 글록의 조합으로 경기에 임했다. 2009년 1월 15일 신차 TF109를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했는데[10], 이는 F1계 전체를 덮치는 비용 절감 흐름에 맞춰 신차 발표회를 생략한 것이다.

토요타는 브라운 GP, 윌리엄스와 함께 새로운 규정의 맹점을 찌르는 "멀티 디퓨저"를 개발했다. 다른 팀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지만, FIA 국제 항소 심판에서 합법으로 인정되었다.

개막전 오스트레일리아 GP에서는 리어 윙 규정 부적합으로 예선 실격되었고, 결승을 최후미에서 시작했음에도 트룰리가 3위, 글록이 4위로 골인했다. 말레이시아 GP에서는 글록이 3위, 제4전 바레인 GP에서는 팀 최초로 예선 프런트 로우 독점을 달성하여 첫 우승을 기대했지만, 결승에서 타이어 전략 실패로 트룰리가 3위를 기록했다. 바레인 GP와 유럽 GP에서는 패스티스트 랩을 기록했다.

중반에는 부진했지만, 제14전 싱가포르 GP에서 글록이 2위, 제15전 일본 GP에서 트룰리가 2위를 차지했다. 일본 GP에서 일본 팀이 시상대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으며, 이것이 토요타 F1의 마지막 시상대였다. 제16전 브라질 GP에서는 전전 예선에서 부상당한 글록을 대신하여 리저브 드라이버였던 고바야시 카무이가 F1에 데뷔했다[11]。 최종전 아부다비 GP에서는 고바야시가 6위에 입상하여, 2007년 사토 타쿠마 (슈퍼 아구리) 이래 2번째로 완전 일본제 패키지(일본 컨스트럭터, 일본인 드라이버, 일본제 엔진, 일본제 타이어)로 포인트 획득을 달성했다.

토요타는 59.5점의 획득 포인트와 컨스트럭터즈 랭킹 5위라는, 전년과 거의 같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다음 해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형태로 시즌을 마감했다.

2. 4. F1 철수

리먼 쇼크로 촉발된 경제 상황 악화로 2008년에 혼다 F1이 F1에서 철수했다. 토요타 본사도 2009년 3월 연결 결산에서 59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면서, 연간 수백억 엔의 예산을 투입하는 F1 활동에 대한 재검토가 거론되었다. 토요타 산하의 후지 스피드웨이는 F1 개최권 반환을 표명했고[12], 윌리엄스와의 엔진 공급 계약도 종료되었다.[13]

토요타는 2009년 7월 콩코드 협정 연장안에 서명하여 2012년까지 참가를 지속할 것을 표명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본사 이사회에서 철수안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TMG 사장 존 하웨트와 부사장 키노시타 요시아키가 경영자 매수(MBO)를 실행하여 토요타로부터 독립, 팀을 존속시키는 방안도 검토되었다.[14] 새 팀 이름 후보로는 불사조를 의미하는 '피닉스'가 거론되었지만[15], 결국 토요타는 F1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길을 선택했다.

아부다비 GP 3일 후인 11월 4일, 도요다 아키오 토요타 자동차 사장은 기자 회견을 통해 200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F1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16][17] 도요다 사장은 취임 전 뉘르부르크링 24시 레이스에 직접 드라이버로 출전하는 등 모터스포츠 응원 추진파였으나, 기자 회견에서는 "사장이 되어 입장이 바뀐 점도 있습니다"라며 고뇌에 찬 결정이었음을 내비쳤다. 기자 회견에 동석한 팀 대표 야마시나 타다시는 "함께 고생해 온 동료들이 떠오릅니다…"라며 눈물을 보였다.[18]

한편, FIA는 토요타의 결정에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재조사할 의향을 보였다.[19] 2009년을 마지막으로 철수하는 BMW는 콩코드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월 30일 FIA가 발표한 2010년 F1 엔트리 리스트에는 "TMG는 콩코드 협정에 서명했으며 팀으로서 참전한다"라는 이례적인 주석이 붙었다.[20] 포뮬러 원 팀즈 어소시에이션(FOTA)는 토요타의 결정에 "실망(Disappointment)"을 표명했지만, 대형 자동차 메이커에게 어려운 경제 상황임을 이해하며 지난 8년간 토요타 F1 팀의 공헌과 활약을 칭찬했다.[21]

11월 22일,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토요타 모터스포츠 페스티벌에서 야르노 트룰리와 고바야시 가무이는 철수가 결정된 토요타 머신(TF109)에 탑승하여 마지막 주행을 선보였다.

토요타는 독일 쾰른의 TMG 시설을 매각하지 않고, 앞으로도 유럽에서의 토요타 모터스포츠 활동 거점으로 계속 이용할 방침이었다.[22] 따라서 혼다 F1이나 BMW 자우버처럼 팀 매각을 통한 참전 지속 가능성은 낮았다.

콩코드 협정 문제와 관련, 2010년 F1 참전을 목표로 한 세르비아의 스테판 GP가 TMG의 계약을 승계하는 형태로 참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으나[23][24], 기술 제휴만 하는 관계에서 기본 합의를 했다.[25] 2010년 시즌용으로 개발 중이던 TF110을 스테판 GP가 사용하고 TMG 스탭 일부도 이적하는 형태로 F1에 관여가 계속될 예정이었지만, 2010년 3월 3일 FIA가 발표한 2010년 F1 엔트리 리스트에 스테판 GP는 포함되지 않아 참전은 무산되었다. TMG는 개막전 시작일에 보도 자료를 내어 F1 관련 기술·개발·공급 지원을 종료하고, 스테판 GP와의 제휴도 해소한다고 발표했다.

5월 5일, 독일 쾰른의 TMG 부지 내에서 TF110이 공개되었고 주행도 이루어졌다. 머신은 두 대가 제작되었는데, 한 대는 카본지의 검은색 그대로였고[26], 다른 한 대는 스테판 GP의 요청에 따라 빨간색으로 도색되었다. TDP 멤버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윌리엄스에서 F1에 참전했던 나카지마 가즈키가 드라이브를 담당했다.[27] 나카지마의 토요타 F1 머신 드라이브는 2009년 토요타 모터스포츠 페스티벌에서 구형 머신을 주행한 이후 공식적으로 처음이었다.

같은 해, 히스파니아 레이싱 F1 팀과의 제휴 교섭이 이루어져 계약도 체결되었지만, 11월 기한에 이 팀이 지불하지 않아 파트너십은 무산되었다.

2. 5. 그 후

리먼 쇼크로 인한 경제 악화와 2009년 3월 연결 결산에서 59년 만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토요타는 F1에서 철수했다.[16] 이후 TMG는 F1 관련 기술 지원을 종료하고 스테판 GP와의 제휴도 해소했다.

2010년 5월 5일, TMG 부지 내에서 TF110이 공개되었고, 나카지마 가즈키가 드라이브를 담당했다.[27] 같은 해 히스파니아 레이싱 F1 팀과의 제휴 교섭이 진행되었으나, 계약금 미지불로 인해 무산되었다.

이후 TMG는 유럽에서의 토요타 모터스포츠 활동 거점으로 유지되었으며, FIA 세계 내구 선수권(WEC) 및 르망 24시에서 우승하는 등 기술 개발에 기여했다.

2024년 10월, 토요타는 하스 F1 팀과의 제휴를 발표했다.[31] 이에 따라 토요타의 드라이버와 엔지니어가 하스에서 테스트에 참가하고 공력 개발을 공동 진행할 예정이지만, 워크스 참전이나 파워 유닛(PU) 공급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33]

3. 팀 운영 및 기술 개발

독일 쾰른에 위치한 토요타 모터스포츠 유한회사(TMG)를 모체로 2000년에 발족했다. F1 팀의 국적은 일본으로 등록되었으며, 2005년에는 30명 이상의 일본인 기술자가 파견되었다.[2] F1 머신의 설계·제작·유지보수는 TMG가 담당하고, 중장기적인 연구 개발(R&D)은 일본 시즈오카현에 있는 토요타 히가시후지 연구소가 담당했다. 이 외에 프랑스 마르세유 근교의 르 카스텔레에 있는 폴 리카르 서킷을 테스트 코스로 사용했다.

2002년 개막전부터 F1에 참가하여, 2009년 최종전 이후 철수를 표명했다. 8년간의 활동 중 결승 레이스 최고 성적은 2위 (5회), 예선에서는 폴 포지션 3회를 획득했다. 컨스트럭터 순위는 최고 4위였다. 일본의 F1 컨스트럭터 중 폴 포지션과 시상대를 획득한 것은 혼다와 토요타뿐이다. 한편 토요타는 2위에 몇 번 올랐지만, 우승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토요타의 연간 예산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F1 관련 미디어의 조사에 따르면, 모든 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F1 레이싱』지 조사에 따르면 2006년도 총 지출액은 전체 팀 중 1위인 약 481억 엔(481억)이었다.[34] 또한, 「Formula Money」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각 연도의 연간 추정 지출액은 1위인 혼다에 이어 3억 달러(3억달러)였다.[35]

통산 0승, 연간 랭킹 최고 4위라는 성적을 보면, 막대한 투자에 대한 비용 효율성은 좋지 않았다. 『F1 레이싱』의 수치에 따르면 르노의 2006년 예산은 6위(약 373억 엔)였지만,[34] 이 해에 더블 타이틀을 획득했다.

대형 자동차 회사가 F1에 참전하는 경우, 기존 팀을 인수하여 기술, 인재, 매니지먼트와 같은 리소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혼다의 경우, B·A·R에 엔진 공급을 시작으로 2006년부터 자사 워크스화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2005년에 철수한 포드 (재규어)와 같이, 오너(기업)와 현장(팀)의 이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3. 1. 토요타 웨이

토요타는 신규 팀을 창설했을 뿐만 아니라, "효율화(무다 제거)", "과제 공유", "개선(kaizen]])"과 같은 본업인 자동차 제조에서의 성공 원리 (토요타 방식)를 모터스포츠에도 도입하여, 독자적인 스타일로 정점을 목표로 했다.[34] 뛰어난 인재보다는 조직의 협조성을 중시했으며, 2006년에 마이크 가스코인을 해임한 후부터는 파스칼 바세론 등 각 부문의 개발 책임자를 나란히 배치하는 집단 체제를 채택했다.[34] 또한, 드라이버 이적 시장에서도 챔피언 경험자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려 하지 않았다.[34] 결국, 이러한 시도는 F1 철수 전까지 결실을 맺지 못했다.[34]

토요타에 6년간 재적했던 야르노 트룰리는 "토요타 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34]

3. 2. 조직력

야르노 트룰리는 2013년 인터뷰에서 전 TMG 사장 존 하웨트를 "그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라고 비판했다[36]. 하웨트는 라이벌에게 조언을 구해 로스 브라운과 에이드리언 뉴이 영입을 포기하고, 타이어 회사 출신 파스칼 바세론을 기술진의 수장으로 앉히는 등[37] 인사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한다.

3. 3. 기술 개발

TMG는 F1에서 철수한 후에도 피렐리의 F1 타이어 테스트에 머신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전기 레이싱카 개발 등 다수의 하이테크 프로젝트를 위탁받고 있다. 이러한 위탁 업무에는 현재 F1에 참가하고 있는 팀으로부터의 개발 작업·제조 위탁, 풍동 임대 등의 업무도 포함된다.[29] 특히 풍동에 관해서는 다른 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페라리는 F138처럼 자사 풍동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TMG의 풍동만으로 공력 개발을 한 경우도 있었다.[29]

2012년 3월, 전 B・A・R의 매니저로 알려진 크레이그 폴록이 이끄는 P.U.R.E사가 2014년부터의 F1 참전을 목표로 TMG와 엔진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30] P.U.R.E는 TMG 팩토리의 설비를 빌려 2014년부터 도입될 1.6리터 V형 6기통터보 엔진 개발 준비를 진행했다. 그러나 P.U.R.E는 자금난으로 인해 2012년 7월에 활동을 중단했으며, 이 엔진 개발은 사실상 좌절되었다.

절정기에는 본거지인 TMG에 1,000명의 직원을 두고 최신 실험 설비로 개발을 진행했다. 톱 팀의 경우, 크고 작은 2기의 대형 풍동을 가동하지만, 측정 데이터의 조율(캘리브레이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토요타는 2007년에 제1풍동 옆에 같은 크기의 제2풍동을 완성하여 개발 속도와 정밀도를 높이려 했다. 토요타의 F1 철수 후에도 페라리 등 여러 팀이 이 설비를 임대하고 있다.

4. 유산

토요타 F1 팀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F1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해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토요타의 현재 모터스포츠 활동에 큰 유산을 남겼다.

F1 활동 거점이었던 TMG는 F1을 위해 투자된 최신 설비와 기술을 바탕으로 WEC 챔피언 머신인 TS040 HYBRID와 르망 24시 우승 머신인 TS050 HYBRID를 개발했다. 또한 2018년 제조사 선수권을 획득한 야리스 WRC의 엔진(GRE) 역시 TMG가 개발했다. GRE 개발 책임자인 아오키 노리아키는 F1 시절부터 TMG에서 활동했다.

토요타는 F1에서의 막대한 자금 소모를 반성하여, WEC의 LMP1에서는 아우디포르쉐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운영되었다.

5. 스폰서

기업명분야비고
파나소닉종합 가전메인 스폰서
덴소자동차 부품토요타 그룹, 일본 최대 기업
BMC 소프트웨어소프트웨어 개발
브리지스톤타이어타이어 제공
다쏘 시스템3차원 컴퓨터 그래픽스 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에본닥스소프트웨어 개발
EMC소프트웨어 개발
엑손모빌윤활유, 연료에소 브랜드로 제공
인텔하드웨어 개발
KDDI종합 통신 사업해당 회사의 대주주. 2009년 기준 교세라 다음으로 2위
마그네티 마렐리자동차 전자 부품자동차 전자 부품 제공
타임 인크출판사미국의 출판사
알파인스타레이싱 수트 등레이싱 수트 등 제공
퓨처 스포츠피트니스독일의 피트니스 기업
교토 기계 공구(KTC)공구공구 제공
MAN운송 차량운송 차량 제공
유로윈드일기 예보팀에 일기 예보 제공
노틸러스피트니스 용품
타카타안전 벨트
울트


6. 성적


참조

[1] 웹사이트 Engine Toyota • STATS F1 https://www.statsf1.[...] 2021-02-26
[2] 뉴스 TMGの日本人を紹介 http://f1express.cnc[...] トーチュウF1エクスプレス 2005-08-12
[3] 서적 F1 トヨタの挑戦
[4] 문서 1999年には欧州戦略車として[[コンパクトカー]]の[[トヨタ・ヴィッツ|ヤリス]](日本名ヴィッツ)を投入した。
[5] 서적 トヨタF1 最後の一年
[6] 문서 本来、この枠はホンダが獲得する予定だったが、エンジン供給のみに予定変更したため空枠となっていた。
[7] 간행물 『レーサーズ外伝 特集 TOYOTA GT-One』 三栄書房 2019-08-07
[8] 서적 F1 トヨタの挑戦
[9] 뉴스 Former Ferrari men indicted http://www.grandprix[...] 2005-11-09
[10] 웹사이트 http://f1.automoto36[...]
[11] 문서 日本GPではグロックの代わりの小林代走が認められなかったため、トゥルーリ1台でチームは決勝に臨んだ。
[12] 뉴스 トヨタ、富士スピードウェイでのF1日本GP撤退を決定 http://f1-gate.com/t[...] F1-Gate.com 2009-07-01
[13] 뉴스 トヨタ、ウィリアムズとのエンジン供給契約を打ち切り http://f1-gate.com/t[...] F1-Gate.com 2009-10-14
[14] 서적 トヨタF1 最後の一年
[15] 서적 トヨタF1 最後の一年
[16] 뉴스 トヨタ、F1撤退を正式発表 http://f1-gate.com/t[...] F1-Gate.com
[17] 뉴스 トヨタ、F1からの撤退を発表 http://www.toyota.co[...] トヨタ自動車
[18] 뉴스 F1をめぐる「男の涙」 産経新聞 2009-11-16
[19] 웹사이트 Toyota And Bridgestone http://www.fia.com/e[...] FIA 2009-11-04
[20] 웹사이트 2010 FIA Formula One World Championship Entry List http://www.fia.com/e[...] FIA 2009-11-30
[21] 웹사이트 Disappointment at Toyota withdrawal, but FOTA expects a better 2010 for F1. http://www.teamsasso[...] FOTA 2009-11-04
[22] 뉴스 TMG、今後はヨーロッパにおけるトヨタの活動拠点に F1チームへの売却は無し https://www.as-web.j[...] オートスポーツ 2009-11-04
[23] 뉴스 ステファンGP、トヨタのF1参戦権を買収か http://f1-gate.com/t[...] F1-Gate.com 2009-11-28
[24] 뉴스 トヨタ、F1チームを売却との報道 http://topnews.jp/20[...] F1 TopNews 2009-11-30
[25] 웹사이트 News 29/01/2010 http://www.stefangp.[...] Stefan GP
[26] 웹사이트 Responce.jp(2010年5月21日) http://response.jp/a[...] 2010-05-21
[27] 웹사이트 Responce.jp(2010年5月21日) http://response.jp/a[...] 2010-05-21
[28] 뉴스 ピレリ、トヨタ TF109をF1タイヤテストで使用 http://f1-gate.com/p[...] F1-gate.com 2010-08-17
[29] 뉴스 フェラーリ「2013年F1マシンの風洞作業はすべてトヨタの施設で」 http://www.topnews.j[...] F1 TopNews 2013-02-02
[30] 뉴스 PURE社、TMGの施設でF1エンジンを開発 https://www.as-web.j[...] オートスポーツ 2012-03-08
[31] 뉴스 TOYOTA GAZOO RacingとMoneyGram Haas F1 Team、自動車産業の未来を見据えた業務提携に合意 https://global.toyot[...] トヨタ自動車 2024-10-11
[32] 뉴스 ハースF1率いる小松礼雄、前任シュタイナーにできなかった“投資”を引き出せた理由とは? https://jp.motorspor[...] motorsport.com 2024-09-07
[33] 뉴스 「【トヨタF1復帰】と書かないで」異例の注文の理由とは? 主語は「人」と「未来」【豊田章男会長発言全文】 https://bestcarweb.j[...] ベストカーWeb 2024-10-13
[34] 서적 F1 Racing日本版特別編集 F1マネー&サイエンス Vol.2 イデア
[35] 뉴스 Has downturn left F1 underpowered? http://news.bbc.co.u[...] BBC News 2010-01-05
[36] 웹사이트 "トヨタF1の成功を阻んだのはひとりの男だった」トゥルーリQ&A(1)" http://archive.as-we[...]
[37] 웹사이트 それから、技術面でラルフ・シューマッハーに頼るという過ちを犯し、2年を無駄にした。 https://www.as-web.j[...] www.as-web.jp 2021-01-16
[38] 뉴스 Juttner: LMP1 Hybrid is “Overkill” for Costs, Sustainability https://sportscar365[...] sportscar365 2017-08-10
[39] 뉴스 Toyota set for F1 debut http://news.bbc.co.u[...] 2007-07-05
[40] 뉴스 car for sale Philippines https://philkotse.co[...] 2018-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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